여기 토끼 같은 여자와 거북이 같은 남자가 있다. 지금까지 토끼와 거북이를 생각해보면 둘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경쟁상대로 인식되어오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토끼와 거북이는 1:1 무승부이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간을 빼앗기지 않았으므로 1승을 거두었고 거북이는 달리기에서 토끼를 제치고 결승점에 도달하였으므로 결론은 무승부이다.
그런데 이 둘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수씨하고 민주씨 잠깐 내 자리로 와볼래요?”
팀장의 부름이다. 민주는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네! 라고 대답하며 재빨리 쪼르르 팀장의 자리로 달려갔고 현수는 민주보다 한 박자 늦은 대답고 걸음으로 팀장의 자리로 갔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프로젝트에서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생겼어요. 어려운 건 아니고, 음. 보자. 그러니까.”
팀장도 부장님께 듣고 온 업무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부장이 넘겨준 업무자료를 이리저리 넘기며 쓸데없는 단어로 말을 이어붙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팀장은 말을 이었다. 이 둘이 해야 할 일이 정리가 된 모양이었다.
“이번 테마는 갯벌이야. 갯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우리 회사 이미지를 잘 부합해서 진행해보도록 하라고. 체험이나 코스, 맛 뭐 다양하잖아? 잘 할 수 있지?”
팀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비교적 간단했다. 그런데 프로젝트 업무를 맡은 이 둘의 조합이 문제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둘이었지만 한 편으론 그리 나쁜 조합도 아니었다. 토끼 같은 여자는 아이디어가 좋았고 간간이 분위기도 잘 띄우는 사람이었다. 거북이 같은 남자는 조용하고 남들보다 한 박자 느렸으나 성실함만큼은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가 이 둘에게 떨어졌다. 팀장은 아이디어가 좋은 여자와 성실한 남자를 붙여놓기로 한 것이다.
회사의 여직원들은 어떻게 저렇게 답답한 사람이랑 일을 하냐며 민주의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남직원들은 꾀만 부리면서 일하는 것보다 현수씨처럼 일하는 것이 정석이라며 각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둘은 시장조사도 해야 했고 갯벌에도 다녀와야 했음으로 온종일 거의 붙어있다시피 해야 했다. 민주는 매번 너무 꼼꼼하고 느린 성격의 현수가 답답했고 현수는 계획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는 민주가 못미더웠다. 둘은 거의 각자 스타일대로만 기획안을 만들기 시작했고 팀장은 다시금 그 둘을 불러 세웠다.
“도대체 이게 뭐야? 둘이 같이 조사한 것 맞아? 누가 기획안 따로따로 작성하래?”
“팀장님 그게 아니고.”
“아니고 맞고 간에 오늘 둘이 사천 내려갔다와. 거기 갯벌에서 뒹굴든 치고 박고 싸우든 알아서 해. 제대로 된 기획안 가져오기 전까지 서울 올라올 생각도 하지 말고, 알겠어?”
팀장은 민주의 말을 매정하게 끊은 채 톡 쏘아 붙였다.
민주와 현수 둘은 하는 수없이 사천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둘은 도착하기 전까지도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 둘은 사전조사를 위해 섬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토끼가 하늘을 나는 듯한 모양의 섬이었다. 마을에 거주하는 할아버지께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내려져 있는 곳이라고 했다.
정신없이 섬을 둘러보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둘은 말없이 떨어져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이 섬이 토끼와 거북이에 관한 섬이래요. 마치 우리를 닮은 것 같네.”
“이번 내기에서는 누가 이길 것 같은데요?”
“아직도 둘 중 누가 이길 것 같은 게 중요해요? 참. 이번 경기에서는 누가 이기고 지고 할 게 없다고요. 아까 팀장님 말 기억 안나요? 둘이 머리 싸매고 함께 해야 한다고요.”
토끼 같은 여자와 거북이 같은 남자는 서로 마주보고 싱긋 웃었다.